Notice
Recent Posts
Recent Comments
Link
«   2026/06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Archives
Today
Total
관리 메뉴

금붕어의 깨진 어항

[맨정신 ] 4장 번역 본문

Amazarashi

[맨정신 ] 4장 번역

Cavo 2026. 2. 13. 08:11

이케부쿠로 역 동쪽 출구를 나오자마자 보이는 건물 쇼윈도의 창틀에 나는 걸터앉아 있었다. 한낮의 땡볕 아래, 아스팔트에서 올라오는 열기에 땀을 흘리면서도, 나는 길을 지나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바라보고 있었다. 등에 멘 배낭에는 어제 사무실을 나온 후에 산, 15cm의 식칼이 들어 있다.

 


여기에 앉아 한 시간 남짓, 나는 눈앞을 지나는 사람을 칼로 찌르는 시뮬레이션을 몇 번이나 해봤다. 사람이 지나가는 순간 일어서서, 등 뒤로 다가간다. 양손으로 칼을 쥐고 찌를까, 한 손으로 내리칠까. 인간의 몸은 단단할까, 부드러울까. 아르바이트 때 자주 들었던 모래포대를 떠올린다. 그 정도일까. 그렇다면 양손에 힘을 꽉 주지 않으면 제대로 박히지도 않겠지. 피는 어떨까. 뿜어져 나올까, 뚝뚝 떨어질까. 찔린 사람은 비명을 지를까. 주변 사람들은 금방 알아챌까. 아니, 의외로 눈치채지 못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곧 누군가 비명을 지를 것이다. 아마 여자겠지. 모두가 공포에 질릴까. 나를 붙잡아 누르려 할까 그 사람에게 다시 칼을 찔러 넣을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가 그런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중간부터는 망상 놀이로 바뀌어버려, 나는 뒤숭숭한 마음으로 길을 지나는 수많은 사람들의 발치만 바라볼 뿐이었다.

어쩌다 이렇게 되어버렸을까. 나는 늘 생각해. 예전에는 즐거운 일도 있었고, 친구도 있었고, 여자친구도 있었고, 몰두했던 일도 있었다. 지금은 그 모든 것이 사라졌다.. 언제부터였을까. 무엇이 계기였던 걸까.


생각나는 건, 밴드를 그만둔 일일까나. 하지만 어쩔 수 없었어. 나에게 재능이 없다는 건, 이미 지긋지긋할 정도로 깨닫게 되었고, 도쿄에 올라온 지 4년, 충분히 노력은 했을 터다. 그렇다면 깨끗이 포기하고, 평범하게 일하면서, 평범한 삶을 살면 되잖아. 누구라도 하고 있는 일이다.
그런데 왜, 나는 그런 평범한 일을 할 수 없는 걸까. 당연한 일이 이렇게나 괴로운 걸까. 결국, 문제는 나 자신이다.


또다시, 결국 모든 일의 원흉은, 언제나 나 자신이다. 내가 좀 더 사교적이었다면, 요령 좋은 인간이었다면, 누구에게나 호감을 사는 사람이었다면, 
아무리 없는 걸 바란들 소용없다. 이제 됐어. 더는 고민할 필요도 없다.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난다. 타인을 미워하는 건 엉뚱한 짓이다. 결론은 이미 나와 있어.

 


사람이 붐비는 곳은 질색이었지만, 이렇게 차분해진 마음으로 밖에 나와 있는 건 참 오랜만인 것 같다. 이제 모든 게 끝나는 거니까. 무서울 게 뭐가 있겠어.
바람이 부는 소리, 자동차의 경적, 이케부쿠로의 소음까지. 그 모든 것이 나와는 다른 세계의 일처럼 보였다. 나는 이 세계에 잘못 태어난 거다.

 


나는 시간을 확인하려고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익숙한 이름의 부재중 전화가 한 통 남아 있었다. 예전에 함께 밴드를 했던 치노였다. 그는 가끔 이렇게 전화를 걸어왔지만, 내가 밴드를 그만둔 이후로는 한 번도 받은 적은 없다. 애초에 휴대폰 벨소리도 울리지 않게 설정해 두었다. 하지만 오늘의 나는, 치노와 얘기해 볼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이제는 무서울 것도 없으니까. 이 추잡한 도시, 이 취한 세계에 작별을 고하기 전에, 가장 친했던 친구와 이야기하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처럼 느껴졌다.


그날 밤, 나는 치노와 술을 마시러 나갔다. 전화를 걸었을 때부터, 이렇게 될 거라는 건 예상하고 있었지만. 치노는 술을 좋아했고, 나도 술을 좋아한다는 걸 치노는 알고 있으니까.

 


우리는 네리마 역 근처의 체인 이자카야에서 만났다. 치노는 센카와 역 근처에 살아서 예전에도 자주 이런 식으로, 이 이자카야에서 술을 마시곤 했다.



치노는 변함없이 쾌활한 말투로, 자주 자신의 근황을 이야기했다. 새로운 밴드를 결성한 일. 시부야 라이브 하우스에서 원맨 라이브를 만석이 된 일. 여자친구와 동거를 시작한 일. 그 모든 것이 나에게는 눈부시고, 부러운 자랑으로 들렸지만, 그가 그런 얄미운 녀석이 아니라는 건 내가 제일 잘 알고 있었다. 치노는 나쁜 녀석이 아니야. 처음엔 필사적으로 억지 웃음을 지으며 맞장구를 쳤지만, 술이 돌면서 자연스럽게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

「너는 요즘 어떻게 지내?」 

치노가 대충 이야기를 마치고, 이제 네 차례라는 듯이 나에게 물었다. 나는 순간 소름이 끼쳤다. 옆의 빈자리에 놓아둔, 칼이 든 배낭을 힐끗 보고는 더듬거리면서 「요즘은 히키코모리처럼 지내지」라고 농담처럼 말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리고 나서 알바는 이미 그만두었다는 것과, 본가로 내려갈 것이라는 이야기를 더듬거리며 말했다.


치노는 언제 그랬냐는 듯, 진지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듣는 바람에, 나는 괜히 못 할 말이라도 꺼낸 것 같아 조금 긴장하고 말았다. 치노는 "그렇구나"하고 중얼거린 뒤, 말을 이어갔다.

「너 전화도 안 받고 그래서, 걱정했었어. 혹시나 했는데 예상대로네」 

나는 최대한 가볍게 웃으며, "미안, 미안" 하고 상황을 웃어넘기려 했지만, 치노는 그냥 넘어갈 생각이 없어 보였다.

「뭐가 문제인데. 말해봐」 

「아니야, 그렇게 심각한 얘기는 아냐」

취기가 오른 탓인지, 조금 달아오른 치노가 나는 성가셔져서 말을 돌리려 했지만, 치노는 목소리를 높이며,

「 할 말은 해야겠어, 너 지금 당장이라도 사고 칠 것 같은 표정이니까」 

그 말에 나는 말문이 막혀버렸다

'Amazarashi'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맨정신] 6장 번역  (0) 2026.02.13
[맨정신] 5장 번역  (0) 2026.02.13
[맨정신] 3장 번역  (0) 2026.02.12
[맨정신] 2장 번역  (0) 2026.02.12
[맨정신] 1장 번역  (0) 2026.0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