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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붕어의 깨진 어항

[맨정신] 3장 번역 본문

Amazarashi

[맨정신] 3장 번역

Cavo 2026. 2. 12. 23:51

다카다노바바역을 와세다 출구로 나와, 왼편의 완만한 오르막길을 걷는다. 지금은 17시쯤일까, 해는 아직 저물지 않았다. 학생들이 많은 기분이 든다.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사람들을 필요 이상으로 피하고 있었다. 바로 뒤에서 들려온 웃음소리가 나를 비웃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는, 등골이 서늘해지며 순간 식은땀이 쏟아졌다. 아니 정말 그런걸까? 그저 망상인 건 아닐까? 나는 침착하게, 조심스레 뒤에 있는 젊은 남자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거봐, 역시 망상이다. 나를 비웃고 있었던 게 아니였어. 역에서 10분 정도 걸어, 사무실이 들어선 빌딩의 엘리베이터에 탔을 때. 나는 이미 녹초가 되어 있었다.

 

 

나는 이미 익숙해졌지만, 이 엘리베이터는 지저분해. 벽은 여기저기 움푹 패어 있고, 낙서나 정체불명의 영문 스티커, 벗겨진 도색. 처음 타는 사람은, 이 빌딩에 라이브 하우스라도 있는게 아닐까 생각하겠지. 이런 엘리베이터가 있는 빌딩에, 제대로 된 회사가 들어와 있을 리가 없어.

 

 

엘리베이터가 4층에서 멈추고, 문이 열리자 10평 정도의 사무실이 보였다. 나는 늘 그렇듯 「수고하십니다」라고 말한다. 그러자 파티션 너머에서 「수고하셨어요」라며 몇 명의 목소리가 들린다. 아마 세 명 정도의 사무원이 일하고 있겠지. 전화로 대화한 적은 있어도, 얼굴은 거의 본 적이 없다. 안쪽으로 들어가면 급여를 전달받는 접수처가 있고, "수고하셨습니다"라는 인사를 신호로 담당 여자는 파티션 뒤에서 나타난다.

 

 

나는 가볍게 인사하며, 지갑에서 작업 확인서 라고 적혀있는 종이 조각을 다섯 장 내밀었다. 이것으로 급여와 맞바꾸는 식이다. 담당 여자는 사무적으로 종이를 확인하고, 지폐 몇 장과 동전을 내게 건네며 말했다.

 

 

「내일은 일 나오시나요?」

 

여자는 평소와 다름없이 내게 물었고, 그제야 우리는 처음으로 눈을 맞췄다. 이 여자는 항상 옅은 웃음을 띠고 있다. 분명 이게 그녀 나름의 무표정인 거겠지. 억지 웃음같은건 짓지도 않는다. 화장이 진하고 무표정한, 이 지장보살을 닮은 20대 후반의 여자를 반가워할 사람이라곤 급여를 받으러 오는 아저씨들뿐이겠지.

 

 

나는 눈을 마주친 탓에, 술에 취한 것이 들킬까 봐 조금 긴장했다. 사실은 이 일을 계속할 생각이 없었기에, 들켜도 별 상관 없었지만, 불필요한 대화가 하나 늘어나는 것만으로도, 나는 언제나 상대가 누구든지 간에 그런 상황이 두려웠다.

 

 

「아뇨, 내일도 쉬겠습니다」

 

나는 최대한 무표정을 유지하려 애쓰며 대답했다.

"그러시군요, 수고하세요" 라고 말하며 여자는 파티션 너머로 무심하게 돌아갔다. 유령 같은 뒷모습이었다. 나도 "수고하세요"하고 대답하며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그 때, 파티션 너머에서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하고 있는 게 들렸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단편적으로 들리는 말은 「얼굴이 빨개」「취했네」 그리고 억누른 웃음소리.

 

 

기분 탓이다, 망상이다, 자의식 과잉일 뿐이야. 나는 평소처럼 스스로를 타이르며, 엘리베이터가 오기를 기다렸다. 얼굴에 피가 쏠리는 게 느껴진다. 순식간에 인중과 등에서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마침내 엘리베이터가 도착하자, 나는 서둘러 올라탔다. 그 순간, 무릎이 후들거리는 바람에 넘어질 뻔 했다. 떨리는 손으로 1층 버튼을 마구 눌러댔다. 문이 천천히 닫히는 동안, 아마 숨조차 쉬지 못했던 것 같다. 망상이야, 다 망상이야. 몇번이고 계속해서 마음을 진정시키려고 애써 보았지만, '저건 망상이 아니야, 넌 지금 바보취급 당하고 있는 거라고' 하고 내 안의 목소리가 머리속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그래, 저들은 나를 바보 취급하고 있었던 거다. 항상 그랬던 거야. 그 담당 여자도, 얼굴도 모르는 사무원들도,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도, 전철에서 나를 흘끗 쳐다보는 사람들도. 젠장. 언제나 망상이다, 자의식 과잉이다 하며 스스로를 타이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쯤은 알잖아. 내 귀로 직접 듣고 있으니까.

 

 

사실은 알고 있어, 모두가 나를 우습게 보고, 모두가 나를 비웃는다는 걸. 언제나 술에 취한 사람들은 자신의 추함이나 결점을 숨기고, 맨정신의 인간을 공격한다. 마치 그것이 대의의 심판이라도 되는 양. 그리고 다른 사람의 고통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처럼, 너무나 쉽게.

 

 

고작 내가 할 수 있는 저항이라곤, 머리속으로 그놈들에게 욕을 퍼붓는 것이었다. 그 바람에 나는 나 스스로에게 진저리가 날 만큼 꼬여있는 인간이 되고 말았다. 왜 나만. 왜 나만 이런 일을 당해야만하는 건데. 화가 치밀어 오른다. 짜증나. 다 죽여버릴꺼야.

 

 

엘리베이터 벽을 힘껏 걷어찼다. 1층 문이 천천히 열렸다

 

 

눅눅한 공기가 목덜미를 스친다. 거리는 변함없이, 나 따위는 신경쓰지 않은 채 북적거린다. 나는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억누르느라 필사적이었다. 천천히 숨을 가다듬는다. 나는 너무나 분해서,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었다. 저 엘리베이터가 왜 그렇게 찌그러지고 엉망이었는지 알 것 같아. 나처럼 벼랑 끝에 내몰린 사람들이 분명 많았을 거야 그 알바에서 만났던, 음식물 쓰레기 냄새가 나던 아저씨도 이런 기분을 느낀 적이 있을까. 이곳은 무덤이야. 절망이야. 전부 죽여버리겠어.

 

 

어금니를 너무 꽉 깨문 탓에 턱이 아려온다. 어깨가 들썩일 정도로 숨이 가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금방이라도 쏟아질 듯 눈에 눈물이 가득 고여 있었다.

 

나는 글러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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